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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s: I am a preacher in Christi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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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3월 10, 2004. I am a preacher in Christianity. 계명대학교 자연대학 수학과 졸업. I am a preacher in Christianity. Korea Theological seminary in south Korea. 작은 우연한 만남이 귀한 만남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저의 웹블로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I am a preacher in Christianity. 신앙과 신학적인 글 모음 블로그(veritasdei). 종교적 신앙적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변. To my main homepage. 여행 테마 테마 이미지 제공: AndrzejStaj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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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s: 진화론과 창조론의 합리성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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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5월 20, 2004. 진화론과 창조론의 합리성에 대한 소고. 진화론에서 창조론이라고 하는 입장을 비판하고 있다고 할 때에 그러한 비판의 실제적 의미는 상실한다고 말할 수 있다. 비판할 수 있다는 것과 비판의 정당한 성립이라고 하는 것은 다르게 나타 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객관적인 입장이다. 1 진화론의 창조론 비판에 대하여서. 진화론에서의 창조론을 비판함에 있어서 합리성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 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합리성이라고 하는 것이 그 객관성을 전혀 보장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을 말할 수 없을 때에는 그 비판의 실제도 의문시 되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진화론의 합리성이라고 하는 것이 객관성을 취한 합리성이면서도 그것은 상대적보편이라고 함에 있어서 그 주관적 객관이라고 함을 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것은 주관적 객관이라는 개념을 보완할 수 있는 객관적이라는 동의적 정당함을 의지하기 마련이다. 고 하는 것을 판단하는 것은 이미 그 정당함을 자체적으로 가질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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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s: 4월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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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4월 13, 2006. 교회의 기본적인 예배와 전도행위로 개척함을 교단 소속 노회에서 허락함, 이때 동일한 교회이나 교회의 질서적 차원에서 설립된 한 개체교회로는 인정되지는 않음. 교회의 구성요건과 설립요건을 갖추고 기본적인 예배와 전도행위로 개척시작함을 교단 소속 노회에서 인증함, 이때 동일한 교회로서 개체교회로서 노회에서 정식으로 인정됨.(교단과 노회에 따라 다를 수도 있음). 는 가정교회의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고, 교회명은 공식석상에서는 가칭으로 명명된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는 단번에 구성요건과 설립에 따른 요건을 갖춘 가운데서 일시적으로 교회개척허락되어지고 곧 설립허락인증이 있게 되어 정식으로 한 개체적 교회로 명명되고 인정된다. 피드 구독하기: 글 (Atom). 작은 우연한 만남이 귀한 만남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시길 바라겠습니다. To my main homepage. 여행 테마 테마 이미지 제공: AndrzejStaj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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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s: 회원(membership)
http://operas.blogspot.com/2004/03/membership.html
수요일, 3월 10, 2004. 블로그에 가입하신 회원님들과의 교제하는 블로그들을 연결합니다. 앞으로 한국과 그 외에 성도들의 각각의 교제를 위해서 각각의 블로그를 연결하겠습니다. 많이 봐주시고 참여해 주세요. Http:/ agapeia.blogspot.com/. 모든 회원님들을 비롯하여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두가지 권면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인터넷의 영향으로 지역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등한히 하거나 또는 지역교회의 출석을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오해하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터넷은 지역교회를 위한 좀더 본질적으로 보편교회를 위한 것으로써 실존적 자리매김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그러한 이분적 대치적 선함이라고 하는 것의 가치관을 가질 수도 있는 가운데서 교회 예배당에 출석하지 않고 인터넷으로만 신앙생활하겠다는 생각과 유익성을 말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은 잘못입니다. 는 비록 간접적이지만 설교원고나 또는 우리의 글들을 통해 좋은 교제가 더욱 많아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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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s: 8월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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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8월 01, 2006. 1, Biblical Theoloy old and new Testaments. THE BANNER OF TRUTH TRUST. Pennsylvania 17013, U.S.A. 게할더스 보스, 성경신학. 2, THE SELF-DISCLOSURE Of JESUS(The Modern Debate About The Messianic Consciousness) By Geerhardus Vos.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1978. 게할더스 보스, 예수의 자기계시. 3, The Pauline Eschatology. 게할더스 보스, 바울의 종말론. 이승구 오광만 옮김 엠마오. 4, 게할더스 보스, 히브리서의 교훈. 5, THE TEACHING OF JESUS CONCERNING THE KINGDOM OF GOD. AND THE CHURCH GRACE AND GLORY by GEERHARDUS VOS. 6, 게할더스 보스, 하나님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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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s: 프린스톤 신학과 보편실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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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11월 06, 2006. 데이빗 F 웰스, 프린스톤신학, 박용규역 엠마오, pp. 178-191. 옮긴이 박용규 교수의 글로써 부록으로 소개하고 있다. 여러가지 판단이 있지만 그러한 영향력이라고 하는 것이 신학적 경향과 인식으로 한국교회에서 읽을 수도 있다는 것이 설교자의 중심이다. 언급하는 것은 그러한 영향력을 읽을 수 있다고 할 때에 소개되어지는 자들을 주목하면 그러한 신학적 사조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고 개인적으로 참고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소개한다. 그리고 본 제목을 클릭하면 관련된 설교문. 을 참고할 수 있다. 작은 우연한 만남이 귀한 만남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시길 바라겠습니다. To my main homepage. 여행 테마 테마 이미지 제공: AndrzejStaj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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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a Dei: 6월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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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6월 09, 2008. 이 글은 '샘 해리스( Sam Harris. 에 대한 답장으로서의 글이다. 오랫만에 참으로 '인내를 가지고 읽을 수 있었던 책'인 이 책에 대하여 답장으로서의 일반 서평적 글을 쓰려고 한다.( 각주2. 필자는 저자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런 가운데서 저자 샘 해리스에 대한 연민을 느낄 수 있고 또한 한 사람의 무지한 희생자라는 측면에서 측은한 생각이 든다.( 각주3. 그의 보내는 방식과 유사하게 한 명으로서의 무신론적 입장인 저자에게 보냄으로써 전체 입장을 같이하는 분들에게 답장으로써의 글을 쓴다. 1 신학 사조와 작금의 비판적 배경이해. 이와 같이 무신론자들을 비롯한 과학주의의 도전이라고 하는 것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신학사조의 변화에 따른 경향을 말할 수 있다. 현대 신학 사조에서 신복음주의의 실패. 라는 판단이 있었다.( 각주4. 좀더 언급한다면, 어떤 이들은 칼빈의 신학을 ' 하나님의 영광. 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 하나님의 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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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swers to antichristisms: 3월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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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3월 14, 2005. 플라토닉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것을 보며. 플라토닉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것을 보며. 일반적으로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이단이라는 것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12세기에서 읽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삼위일체를 인정하면서도 임의적 차원에서 삼위를 말하는 경향이 있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에 대하여서 공교회에서 비판하고 정죄하였지만 그러한 삼위일체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었고 현대의 신학의 매력적 변증의 사실을 말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함을 주목하게 되는데 참으로 기만적인 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에 대한 실체를 언약이라는 것으로, 인위적 규정하여 언약이라는 실제적 판단에서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이라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에덴버러 신학장의 모습들과 그러한 신학적 전통에서 이루어지는 신학과 신앙을 볼 때에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보겠느냐는 그러한 말씀을 절감하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하나 숫자라는 개념이 편협함을 김교수는 비판...